『논어』는 크게 보면 인의(仁義), 즉 어짊과 마땅함을 기반으로 하는 덕치(德治)와 위형(威刑), 즉 위압과 형벌을 위주로 하는 법치(法治)를 짝으로 해서 이루어진 책이다. 그래서 덕치만을 말해도 법치를 떠올려야 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우리에게 거시적인 차원에서 『논어』 읽는 법을 제시해 준다.
이를 대표하는 구절이 위정(爲政)편 3이다.
공자가 말했다. “(백성을) 정령(政令)으로만 이끌고 형벌로만 가지런히 하면 백성들은 법망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백성을) 다움[德]으로 이끌고 예(禮)로써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또한 (감화되어) 바르게 된다.”
여기에는 ‘앞과 뒤’라는 개념이 녹아들어 있다. 앞에 있는 것이 각각 정령이나 다움이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뒤에서 각각 형벌과 예로써 가지런히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전자로 할 경우 백성들은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無恥]고 했다. 후자로 할 때라야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알게 된다고 했다. 공자에게 부끄러움이란 다름 아닌 교화(敎化)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이다. 이 잣대로 지금 대한민국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을 헤아려 본다. 우리는 과연 교화된 국민들인가?
그러면 다움으로 이끌고 예로써 가지런히 하는 덕치(德治)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학이(學而)편 9에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증자가 말했다. “부모님 상을 신중하게 치르고 먼 조상까지 추모하면 백성들의 백성다움[民德]은 두터운 쪽으로 돌아가게 된다.”
증자가 한 말의 주어가 누구인지만 생각하면 된다. 볼 것도 없이 주어는 임금이다. 임금이 자기 부모와 조상에게 효도를 다하는 모습을 진정으로 보이면 백성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백성다움이 두터워진다. 예의염치를 아는 백성이 된다는 말이다. 요즘 정치지도자는 물론이고 과연 어느 분야 지도자들이 자기 분야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이는가?
위정(爲政)편 20은 지도층에 대한 비판이 더욱 신랄하다. 계강자(季康子)가 물었다. “백성들로 하여금 공경과 충성을 권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자가 말했다. “장중함으로 (백성들에게) 임하면 공경할 것이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제들에게 자애로우면 충성할 것입니다. 능한 이를 들어 쓰고 능하지 못한 이를 가르친다면 권면하게 될 것입니다.”
공자 말에서 주어는 ‘당신’, 즉 계강자이다. 공자는 계강자의 말에 담긴 공경, 충성, 권면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갖고서 절절하게 답을 해주었다. 특히 권면과 관련해서는 지도층 인사가 인사(人事)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과 연결지어 풀어냈다. 여야 할 것 없이 아첨과 아부에 능한 간신배들이 널리 포진되어 있는 현상황에서는 난망이라 할 것이다.
이인(里仁)편 11에 다시 덕치와 법치의 대비가 나온다. 그 효과는 무섭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다움을 생각하면 소인은 땅을 생각하고 군자가 형벌을 생각하면 소인은 혜택을 생각한다.”
이때 군자는 임금, 소인은 백성이다. 임금이 마음에 덕을 품고 있으면 백성들은 자기가 사는 땅에서 좋은 삶을 도모하지만 반대로 임금이 마음에 형벌만을 생각하면 백성들은 자기에게 이로운 것만 생각하여 살던 땅을 내버리고 좀 더 혜택이 많은 것으로 떠나버린다는 말이다. 민심이반이 바로 그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위해 헌법재판소를 오가고 있다. 그 바람에 다른 한쪽에서는 조기대선 운운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대선에 나오려 하는 정치인을 향한 공자의 말의 이인(里仁)편 14에 나온다.
공자가 말했다. “벼슬자리에 있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준비가 되었는지를 걱정하라.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논어』 5분의 1만 음미해도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면모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한우 교장(논어등반학교)
법률신문에서 보기
『논어』는 크게 보면 인의(仁義), 즉 어짊과 마땅함을 기반으로 하는 덕치(德治)와 위형(威刑), 즉 위압과 형벌을 위주로 하는 법치(法治)를 짝으로 해서 이루어진 책이다. 그래서 덕치만을 말해도 법치를 떠올려야 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우리에게 거시적인 차원에서 『논어』 읽는 법을 제시해 준다.
이를 대표하는 구절이 위정(爲政)편 3이다.
공자가 말했다. “(백성을) 정령(政令)으로만 이끌고 형벌로만 가지런히 하면 백성들은 법망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백성을) 다움[德]으로 이끌고 예(禮)로써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또한 (감화되어) 바르게 된다.”
여기에는 ‘앞과 뒤’라는 개념이 녹아들어 있다. 앞에 있는 것이 각각 정령이나 다움이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뒤에서 각각 형벌과 예로써 가지런히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전자로 할 경우 백성들은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無恥]고 했다. 후자로 할 때라야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알게 된다고 했다. 공자에게 부끄러움이란 다름 아닌 교화(敎化)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이다. 이 잣대로 지금 대한민국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을 헤아려 본다. 우리는 과연 교화된 국민들인가?
그러면 다움으로 이끌고 예로써 가지런히 하는 덕치(德治)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학이(學而)편 9에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증자가 말했다. “부모님 상을 신중하게 치르고 먼 조상까지 추모하면 백성들의 백성다움[民德]은 두터운 쪽으로 돌아가게 된다.”
증자가 한 말의 주어가 누구인지만 생각하면 된다. 볼 것도 없이 주어는 임금이다. 임금이 자기 부모와 조상에게 효도를 다하는 모습을 진정으로 보이면 백성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백성다움이 두터워진다. 예의염치를 아는 백성이 된다는 말이다. 요즘 정치지도자는 물론이고 과연 어느 분야 지도자들이 자기 분야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이는가?
위정(爲政)편 20은 지도층에 대한 비판이 더욱 신랄하다. 계강자(季康子)가 물었다. “백성들로 하여금 공경과 충성을 권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자가 말했다. “장중함으로 (백성들에게) 임하면 공경할 것이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제들에게 자애로우면 충성할 것입니다. 능한 이를 들어 쓰고 능하지 못한 이를 가르친다면 권면하게 될 것입니다.”
공자 말에서 주어는 ‘당신’, 즉 계강자이다. 공자는 계강자의 말에 담긴 공경, 충성, 권면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갖고서 절절하게 답을 해주었다. 특히 권면과 관련해서는 지도층 인사가 인사(人事)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과 연결지어 풀어냈다. 여야 할 것 없이 아첨과 아부에 능한 간신배들이 널리 포진되어 있는 현상황에서는 난망이라 할 것이다.
이인(里仁)편 11에 다시 덕치와 법치의 대비가 나온다. 그 효과는 무섭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다움을 생각하면 소인은 땅을 생각하고 군자가 형벌을 생각하면 소인은 혜택을 생각한다.”
이때 군자는 임금, 소인은 백성이다. 임금이 마음에 덕을 품고 있으면 백성들은 자기가 사는 땅에서 좋은 삶을 도모하지만 반대로 임금이 마음에 형벌만을 생각하면 백성들은 자기에게 이로운 것만 생각하여 살던 땅을 내버리고 좀 더 혜택이 많은 것으로 떠나버린다는 말이다. 민심이반이 바로 그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위해 헌법재판소를 오가고 있다. 그 바람에 다른 한쪽에서는 조기대선 운운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대선에 나오려 하는 정치인을 향한 공자의 말의 이인(里仁)편 14에 나온다.
공자가 말했다. “벼슬자리에 있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준비가 되었는지를 걱정하라.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논어』 5분의 1만 음미해도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면모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한우 교장(논어등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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