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정종 | 진덕수 | 이한우 옮김(2017)

6d567a05b57a7.png



특징 

1. 조선 군주들에게 리더십 교과서로 애독된 『대학연의』 저자 중국 송나라 진덕수가 정통 유가적 관점에서 임금과 신하가 일을 하기 위해 쓴 문장을 엄선해 해설한 책 

2. 경전과 역사가 일에 어떻게 접목되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으며, 고급 어휘와 문장 공부에도 유익합니다.  

3. 미출간원고 풀텍스트(원문본 5권 + 한글번역본 5권 = 총10권)로서, 국내 타 번역판이 없는 유일본입니다.

구입 문의  010-5591-2169 



구성 

1. 사명(辭命)(원문본 한글본 각 1권)

2. 의론(議論)(원문본 한글본 각 2권)

3. 서사(敍事)(원문본 한글본 각 1권)

4. 시부(詩賦)(원문본 한글본 각 1권)  



옮긴이 서문 


이 책은 중국 송나라 정치인이자 대학자인 진덕수(眞德秀 1178~1235년)의 문장론 『문장정종(文章正宗)』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연의(大學衍義)』(해냄), 『심경부주(心經附註)』(해냄)에 이어 세 번째로 진덕수의 책을 옮긴 것이다. 이 두 책은 각각 조선시대 왕실의 필독서이자 조선 선비들의 마음수양서로서 크게 사랑을 받았던 책인 반면에 『문장정종(文章正宗)』은 높은 평가에 비해 아주 널리 읽혔던 책은 아니었다. 조선 시대 이 책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진덕수란 어떤 인물인지를 간략히 살피는 것이 순서이겠다.

 

그는 송나라 건녕부(建寧府) 포성(浦城) 사람으로 자는 경원(景元) 또는 희원(希元)인데 나중에 이 둘을 합쳐 경희(景希)로 고쳐 불렀다. 호는 서산(西山)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일설에는 원래 성이 신(愼)이었는데 송나라 효종(孝宗)의 이름인 조신(趙眘)의 이름의 발음을 피해 진(眞)으로 고쳤다고도 한다. 영종(寧宗) 경원(慶元) 5년(1199년) 진사(進士)가 되고, 개희(開禧) 원년(1205년)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격했다. 이종(理宗) 때 예부시랑(禮部侍郞)에 발탁돼 직학사원(直學士院)에 올랐다. 사미원(史彌遠 1164~1233년)이 그를 꺼려 탄핵을 받고 파직됐다. 사미원은 우승상 겸 추밀사(樞密使)로 있다가 영종이 죽자 조서를 고쳐 이종(理宗)을 옹립하고 9년 동안 재상으로 있으면서 태사(太師)에 임명돼 정권을 장악했던 인물이다. 진덕수는 나중에 천주(泉州)와 복주(福州)의 지주(知州)를 지냈다. 단평(端平) 원년(1234년) 입조해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오르고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지제고(知制誥)가 됐다. 그만큼 문장에 능했다는 뜻이다. 다음 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는데 얼마 뒤 죽었다. 강직하기로 유명해 조정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시정(時政)에 대해 자주 건의했고 주소(奏疏)는 수십만 자에 이르렀다. 그의 저서로는 『대학연의(大學衍義)』, 『심경(心經)』 그리고 이번에 옮긴 『문장정종(文章正宗)』 이외에도 『서산독서기(西山讀書記)』가 유명하다. 『서산독서기(西山讀書記)』는 유학의 기초개념 50여 개를 개념사적으로 풀이한 대작이다.

 

옮긴이는 진덕수를 정치 실무와 문장에 동시에 능했던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해 계속 그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 현실과 괴리된 문장, 이론과 상상력이 배제된 현실정치. 우리의 고질병이기도 한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통합적 해법이 어쩌면 진덕수의 사상에 잠재해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聖學輯要)』의 모델이 된 『대학연의(大學衍義)』가 특히 조선 초기 경세가들의 필독서였다면 그의 『심경부주(心經附註)』는 이황이나 이이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 중기 이후 선비나 유학자의 마음 수양을 위한 필독서였다. 그렇다면 『문장정종(文章正宗)』은 조선의 선비들에게 어떤 책이었을까? 우선 이 점부터 짚고 나서 그 책의 내용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이 우리나라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순서라 하겠다.

 

『대학연의(大學衍義)』가 고려말에 신진사대부를 중심으로 널리 읽히며 새로운 나라 조선(朝鮮)을 건설하는 이론적 지주 역할을 했음을 감안하면 『문장정종(文章正宗)』 또한 사대부들 사이에서 읽혔다고 볼 수 있다. 기록상으로 『문장정종(文章正宗)』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세종 10년(1428년) 11월 12일자 조선왕조실록에서다. 이 날 세종은 경연에서 좌대언 김자(金赭)에게 이렇게 말한다.

 

“『문장정종(文章正宗)』과 『초사(楚辭)』 등의 서적은 공부하는 사람은 불가불 알아야 하니 주자소(鑄字所)로 하여금 이를 인행(印行)하게 하라.”

이를 보면 『문장정종(文章正宗)』은 이미 조선초부터 국내에 들어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눈여겨 봐야 할 점은 세종이 이 책을 『초사(楚辭)』와 함께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고대 중국 남방시가의 대표작들을 담고 있는데 굴원(屈原)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 두 책은 적어도 한문 문장론을 공부함에 있어 필독서였음을 세종의 “불가불 알아야 하니”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다 흥미로운 기록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선조가 내린 비망록이다. 많은 비판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선조는 적어도 문기(文氣)에 있어서는 조선 임금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물임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특히 문장론의 맥락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전에 한(韓한유) 유(柳유종원) 구(歐구양수) 소(蘇소식)의 문장을 골라 뽑으라고 전교했었다. 후세에도 물론 많은 문장가들이 배출되어 글이 없는 걱정이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글이 많아질수록 의견도 더욱 갈라져 마치 보석 상점을 구경하듯 현란하고, 태산(泰山)에 노닐듯 천 갈래 만 갈래의 길이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바른길을 지향하여 한마음으로 진취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문장이 옛만 같지 못한 이유이다. 지금 네 사람의 문장만을 취한 이유가 바로 이점에 있는 것이다. 문(文글)은 하잘것없는 지푸라기 같은 것이고, 시는 더욱 하잘것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로서는 중국을 섬겨야 하고 중국 사신을 접대해야 하니 문을 하찮게 여길 수 없고 시도 외면할 수 없다. 나는 또 이한림(李翰林이백)과 두공부(杜工部두보)의 시를 정밀하게 가려서 그 아래에 편입했으면 한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에 주각(註脚각주)이 없으면 알아보기가 어렵다. 더구나 외진 시골의 별로 배움이 없는 사람들이야 어떻게 읽는 곳마다 칼날에 대나무 쪼개지듯 환히 알 수가 있겠는가? 한(韓) 유(柳)는 본디 주각이 있지만 구(歐) 소(蘇)는 주각이 있는지 잘 모르겠고, 이(李) 두(杜)도 본디 주각이 있으나 두시(杜詩)는 소보(邵寶)의 주각을 기록하는 것이 좋겠다. 시인 가운데 고금에 명성을 울린 자들은 대대로 빛이 나지만 내가 이와 두만을 취한 것은 또한 문에서 네 사람만을 취한 뜻과 같은 것이다. 경들이 함께 상의하여 주각을 쓸 것인지 안 쓸 것인지와 이와 두의 시를 편입시킬 것인지 단지 네 사람의 문장만을 뽑을 것인지를 나의 말에 구애받지 말고 소견대로 하도록 하라. 또 이 책이 한번 나오게 되면 혹 기뻐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책 이름은 『문장종범(文章宗範)』이라 하고 싶다. 이는 『문장정종(文章正宗)』과 『문장궤범(文章軌範)』 두 책의 요점을 모았다는 뜻이다. 간소(刊所)를 열어 책을 인출하여 개인적으로 구해 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아울러 문장을 배우려는 사람에게도 보여주었으면 한다. 가능할지 모르겠다.”

 

여기서 『문장궤범(文章軌範)』이란 남송(南宋)의 사방득(謝枋得)이 편찬한 책으로 초학자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문장 69편이 수록돼 있다. 당시 조선의 식자들이 문장을 훈련하는 책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문장에 뛰어났던 선조가 이 둘을 합쳐 『문장종범(文章宗範)』을 편찬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다.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대문장가인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년)은 자신의 문집 『청창연담(晴窓軟談)』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문장정종(文章正宗)』이 나온 이후로 위응물(韋應物)의 시를 무척 사랑했다.” 즉 당나라의 자연시인 혹은 산수시인으로 유명한 위응물의 가치를 『문장정종(文章正宗)』을 통해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문장을 배척하고 도리를 앞세웠던 성리학자들이 득세하게 되는 조선 중기 이후에는 『문장정종(文章正宗)』이 그다지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최고의 문장 교과서였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사실 왕권(王權)보다 신권(臣權)을 중시하는 성리학자들의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태종이나 세종의 제왕학 교재였던 『대학연의(大學衍義)』도 조선 후기에는 은근한 배척의 대상이었다. 다만 『심경부주(心經附註)』는 성리학자들에 의해서도 널리 읽혔다. 진덕수의 이름 석 자는 이처럼 우리의 조선 정치사상사와도 깊숙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렇다면 『문장정종(文章正宗)』이란 어떤 책인가? 진덕수는 당시까지 중국에 전해져 오는 문장들 중에서 바른 원류[]가 될 만한 것들을 모두 가려 뽑겠다는 포부를 갖고서 그것을 사명(辭命), 의논(議論), 서사(敍事), 시부(詩賦)로 나눠 자신이 고른 좋은 글과 시들을 각 범주에 맞게 배열하고 필요에 따라 짤막한 자신의 평을 덧붙였다.

 

사명에는 임금과 신하의 명령 및 건의 등이 집중적으로 실려 있고 의논은 임금과 신하가 일정한 격식 없이 편하게 주고받은 정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보듯 진덕수가 생각한 문장이란 오늘날 문학가들의 문장이 아니라 경세를 위한 실무적인 문장들을 우선시하고 있다. 그 뒤에 한 사람이나 시대를 서술하는 서사가 나오고 맨 끝에 시가 실려 있는데 이 시들도 유가의 도덕에 도움을 줄 만한 것들을 집중적으로 뽑았다는 점에서 문학의 문장론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오히려 문학의 문장론의 전범은 뒤에 상세하게 풀이해 놓은 바와 같이 양나라 소명태자 소통이 편집한 『문선(文選)』이다. 다행스럽게도 『문선(文選)』은 『문선역주』(김영문 외 옮김, 소명출판)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번역돼 있다. 조선시대의 우리 문장선집 『동문선(東文選)』은 바로 이 『문선(文選)』을 염두에 두고서 우리 실정에 맞도록 찬집된 책이다.


이로써 중국의 대표적인 문장 선집 두 가지가 모두 국내에 소개되는 셈이다. 그러면 왜 지금 우리는 『문장정종(文章正宗)』을 읽어야 하는가? 이 물음은 옮긴이가 이 책을 옮기려 했던 이유와 겹쳐 있다.

 

첫째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의 부상(浮上)이다. 인접 국가로서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문화적 깊이를 먼저 파악한다면 우리의 길도 열린다. 이런 믿음으로 그동안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던 『대학연의(大學衍義)』에 뛰어들었고 이번에 다시 무모한 도전을 했다. 이런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 피상적인 중국 고전 몇 권 읽고서 상대할 수 있는 단계는 훨씬 지났다. 다음 세대가 혹은 그 다음 세대가 중국과 상대하여 우호적이면서도 든든한 유대와 긴장을 맺어가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둘째 이 책은 문장론, 특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문학의 문장론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성리학적인 문장론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옮긴이가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편집방식과 수준이다. 여기에는 말 그대로 문사철(文士哲)이 조금의 간극도 없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서양철학에서 출발해 조선사를 거쳐 중국 고전과 씨름하고 있는 옮긴이로서는 참으로 의미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지만 역사와 철학과 문학을 각자 조금씩 하다가 억지로 합친다고 해서 통섭이 될 리 없고 융합이 될 리 없다. 그런 점에서 서양과 동양의 만남이라는 의미 또한 이 책에 녹아 있음을 독자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여기서의 문장은 굳이 표현하자면 현실 속의 문장론이다. 놀라운 것은 옛 중국인들이 현실이라는 난제(難題) 앞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며 그 속으로 파고들었고 그 찬란한 결과물들이 절절한 문장으로 표현됐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같은 절절함이 옮기는 과정에서 얼마나 함께 옮겨졌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따른다.

셋째 우리 사회에는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넘쳐 난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닫고서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나 그에 어울리는 좋은 글쓰기 책이 있다는 소리는 못들어 보았다. 글쓰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진덕수의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글쓰기란 과연 무엇이며 또 글은 무엇인지 그래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당시의 척도에서 가장 좋은 글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한 눈에 글쓰기의 전범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한문이었기에 조선시대 내내 글쓰기의 스승 역할을 했지만 우리말로 잘 옮겨 놓았을 때도 여전히 글쓰기의 스승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이 방대한 분량의 번역을 감행한 것이다.

 

넷째 지난 100년 가까이 사실상 공백지대 혹은 무풍지대에 가까웠던 한문 번역에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아무도 읽을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번역은 번역이 아니다. 이 책에는 고대 춘추시대부터 당나라 때 이르기까지 진덕수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좋다고 하는 문장들이 총망라돼 있다. 따라서 일일이 밝힐 수는 없지만 상당 부분은 국내에 이미 번역돼 있는 책들에서 뽑은 것들도 많았다. 그 덕분에 본의 아니게 원문과 번역문의 대조 작업을 많이 했는데 솔직히 지금 우리 한문 번역 수준은 참담한 수준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소한 오역의 문제도 서둘러 개선돼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아예 문장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한문 번역에 뛰어든 경우가 너무 많았고 걸핏하면 원문 중에 어려운 부분을 생략해버리고 두루뭉수리하게 번역하는 것은 하나의 전통이 되다시피 했다. 이 점은 다양한 문제제기를 통해 서둘러 고쳐야 할 것이다.

 

끝으로 문장의 중요성이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갈수록 문체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문체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업에서도 가능한 한 문체까지 옮기는 문체 번역을 시도했다. 토(吐)달기나 축자(逐字) 번역에서 벗어나, 또한 의역이냐 직역이냐라는 수준 이하의 이분법과 거리를 둔, 의미 번역을 통한 문체 번역을 시도했다. 물론 옮긴이가 이 점을 다 달성했다고는 자부하지 못한다. 대신 누가 어느 언어를 번역하건 이제 우리의 번역 문화는 이런 단계로 끌어올려야 한다. 필자의 작품에 대한 비판 또한 이런 기준에 맞춰 이뤄진다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번역의 저본은 청나라 때 간행된 『흠정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 집부(集部)에 포함된 『문장정종(文章正宗)』을 바탕으로 했고 국내에 번역이 있는 글들 중에서 토씨 몇 개만 고쳐도 좋은 글의 경우 거의 그대로 전재하고 역주(譯註)에 밝혀 놓았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경우는 세 손가락을 넘지 않았다.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차례다. 2016년 2월 고전번역가의 길을 가겠다며 멀쩡히 잘 다니던 조선일보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흔쾌하게 내 뜻을 받아준 아내 김동화와 지금 대한민국 공군장교로 군복무중일 만큼 멋지게 성장해준 아들 이상훈에게 큰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이 책의 출간을 누구보다 기뻐해주셨을 하늘나라의 아버님과 장인어른, 늘 우리 주변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시는 어머니와 장모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즐거운 공부 길의 동반자들인 논어등반학교 등반대원들께도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자리를 빌려 학문의 길을 열어주신 이기상 선생님의 건강을 빌고, 벌써 저 세상으로 가신 지 10년이 돼가는 김충렬 선생님께 이 책을 바친다. 그리고 늘 따뜻한 응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LS그룹 구자열 회장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2017년 7월


서울 상도동 보심서실(普心書室)에서

탄주(灘舟) 이한우(李翰雨) 삼가 쓰다

이한우 공식홈페이지

남김없이 다하는 삶 

그리고 우리를 일으켜세워줄 배움의 길


수강신청 · 강연의뢰 nextpoten.com 

© 2025 이한우 그리고 양현재앤컴퍼니